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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자의폭력

권치남님 2022. 12. 24. 23:30
정신질환 범죄 예방시스템 급하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광주·전남경찰청이 최근 3년간 분석한 '정신질환자 사건 현황' 등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병력을 갖은 사람이 저지른 범죄가 광주 563건, 전남 788건 등 모두 1,351건에 달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폭력이 54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절도 423건, 강간·강제추행 117건, 강도 8건, 살인 8건 순이었다.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신질환자의 수도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각 지자체나 정신복지센터에 등록된 정신질환자수는 광주 3,056명, 전남 7,070명 등 모두 1만126명에 달한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등록되지 않은 숫자도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행정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쉬쉬 하는 바람에 파악되지 않은 환자도 많을 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이들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는 예측이 불가능해 자칫 주변 이웃들의 큰 피해로 이어질 우려를 안고 있다.
실제로 최근 옆집 현관문을 파괴하고 노인(80)을 흉기로 위협해 경찰에 붙잡힌 A씨(45)의 경우 정신질환의 일종인 조현병을 앓고 있으면서 수시로 주변과 마찰을 빚어온 인물로 조사 결과 확인됐다.
또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70대 이웃주민을 주먹과 나무의자로 수차례 폭행해 입건된 B씨(36)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물로 이들 두 사람 다 공식적인 등록이 돼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해 사회에 안정적으로 복귀시킬 수 있는 안전망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당국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혁명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규칙

문명화된 사회에서 폭력은 과거보다 훨씬 무분별해진 것이 사실이다.
개개인의 도덕적인 측면이 강조된 현대사회에서 폭력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거나 재산상의 피해를 주려는 계획적인 행위”(미국 국가위원회의 정의)<에릭 홉스봄,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16장 폭력의 규칙, p352, 영림카디널, 2003>은 일상생활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것에 대한 태도가 단지 모호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사회적 현상으로써 폭력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점은 폭력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폭력에는 그 정도가 다른 다양한 행위들이 존재하며, 이는 폭력도 저마다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양한 폭력의 유형과 정도는 본질적인 면에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소한 일반여론의 정서로 볼 때는 같은 정도의 폭력이라도 정당성이나 합법성의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 사회에서는 폭력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분법으로 구분지어져 있다.
그렇지만 도덕적인 힘(비폭력)을 권장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이해 - 곧, 선을 권장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 - 와 상충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폭력은 사람과 집단간의 일상적 관계를 통제하는데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폭력이 비인격화된 사회의 주된 위험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폭력에 대한 분별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물리적인 힘의 사용을 제어하는 사회적 통제 메커니즘을 풀어주게 된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전통적인 폭력들, 적어도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폭력이 점차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형태의 폭력의 사용도 또 다시 증가하게 된다.
근대에 들어서 폭력의 사용은 그것의 상징성과 함께 생각할 수 있다.
제도화된 법이라는 거대한 힘의 행사에서 폭력이 계속 되고 있을 때, 그에 맞서는 사적인 폭력은 많은 것을 성취하기 힘들게 된다
 힘을 가진 자의 폭력이 그렇지 않은 자에게 가해지는 것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68혁명, 5월혁명, 68년 5월혁명

 

 

68혁명과 신 좌파운동의 의미

담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기존세대의 가치관이 가지는 허구성과 위선을 폭로할 수 있었다. 이전에 금지되었던 것을 행하는 것 그 자체가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이고 새로운 가치,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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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전 07:05
서문 1-3<역사 속의 영웅들, 월 듀런트(1885~1981; 20세기를 대표하는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 안인희 옮김, 황금가지, 2002>
 
 
p 21 
 
* <현재> 우리의 <이교적인 방종>이야말로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증>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종은 보통 그 <반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임성삼; 1960년대 히피 문화가 유행할 때가
이 글을 쓰신 <현재>라 생각합니다.]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적 장면의 하나는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임성삼; 한 사람의 생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 네로(37~68)와 코모두스(로마황제 재위; 180~19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들)와  
 
그 이후 황제 치하 <고대 로마의 도덕적 붕괴>에 뒤이어  
 
기독교의 융성이 등장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272~337)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보호를 받기에 이른다. 
 
기독교는 <질서와 예의>의 <원천이자 버팀목>으로 여겨졌다.
 
 
- 보르지아 가문 사람들(교황 알렉산드로스 6세와 그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1475~1507))이 설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용병대장들의 폭력과 성적인 문란함은 
 
마지막에 <교회의 정화와 도덕성의 회복>이라는 결과에 도달하였다.
 
 
- 엘리자베스(1533~1603) 여왕 치하에서의 문란함은 
 
크롬웰(1599~1658) 치하의 <청교도주의>로 넘어갔다가, 
 
다시 그 반작용으로 찰스 2세(1630~1685) 치하 영국의 무종교 상태로 바뀌었다.
 
 
- 프랑스 혁명(1789) 10년 동안 정부, 결혼, 가족이 붕괴되었던 일은 
 
결국 나폴레옹 1세(1769~1821) 치하에서의
<법과 교육과 부모 권위의 회복>으로 끝이 났다.
 
 
- 바이런(1788~1824)과 셸리(1792~1822)의 낭만적 이교주의와,
뒷날 조지 4세(1762~1830)가 되는 영국 황태자의 방종한 행동은 
 
빅토리아(재위 1837~1901) 시대 영국의 <단정함>으로 넘어갔다. 
 
이런 전례를 받아들인다면  
 
우리 자녀의 손자들이 청교도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성삼; 이 작가분(1885~1981)의 손자 시대가 저의 세대입니다.  
 
이분의 말씀과 달리 청교도적인 사람이 많지는 않으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 그러나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 사이의 이러한 진자 운동보다
<더 즐거운 전망>이 있다.

나는 저 볼테르(1694~1778)와 기본(Gibbon, 1737~1794)의 비관적 결론, 
 
즉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기록>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겠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 말이 옳고,
또한 수억 가지의 비극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생명의 흐름을 이끌어온 것은 
 
- 평범한 가족의 건강함과, 
 
- 남자들과 여자들의 노동 
 
- 그리고 사랑이다.

또한 윈스턴 처칠(1874~1965)과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 같은
<정치가들의 지혜와 용기>도 있다. 
 
루즈벨트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죽었으나
그래도 맡은 일은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들을 둘러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굴하지 않는 노력도 있다.

또 덧없는 아름다움에 지속적인 형식을 부여하고,
미묘한 의미를 밝히려는 <예술가들과 시인들>의 끈질김과 기술도 있다.

그리고 우리를 <고귀함>으로 안내하는
<예언자들과 성인(聖人)>의 환상도 있다.
 
 
이 소란스럽고 더러운 강 위에,
부조리함과 고통 한가운데에
진짜 <신의 도시>가 감추어져 있다.

이 도시에서는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기억과 전통의 기적>에 의해 아직도 <살아서> 작용하고 
 
모습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거기서는 플라톤(기원전 428?~348?)이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와 함께
철학을 가지고 논다. 
 
셰익스피어(1564~1616)가
매일 새로운 보물을 가져온다.

키츠는
아직도 나이팅게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셸리는
서풍(西風)에 실려 떠다닌다. 
 
니체(1844~1900)가
거기서 미친 듯 떠들어대며 폭로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빵을 함께 나누자고 우리를 부른다. 
 
이들과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준 선물이  
 
인간 종족의 엄청난 유산이다. 
 
씨줄과 날줄로 짜인
역사라는 천을 이어가는 황금의 혈통이다.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여기에 앉아  
 
고귀한 여자들과 
 
위대한 남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하자. 
 
///
1-3<역사 속의 영웅들, 월 듀런트(1885~1981), 안인희 옮김, 황금가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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