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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앙이란? 믿음과 사랑 (요일 4:7-16)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나라 정치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여론조사입니다. 후보를 결정할 때도 여론조사를 하고, 정책을 준비할 때도 여론조사를 합니다.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범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할 때도 여론을 살핍니다. 여론재판은 비열한 수사입니다. 검찰이 범죄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이 압박하게 하여 검찰의 부담을 줄이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조국 전 장관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검찰 수사권을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언론도 학계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소위 검수완박을 하면 시민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사실 일반 시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검찰 수사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검찰은 솔직하게 법이 위법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권력을 빼앗기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도 여론조사를 하고, 국민의 뜻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자고 하는데 억지 주장일 뿐입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강조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흐름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누가, 또는 어떤 주장이 높게 나왔다는 것보다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론이 부정확할 수 있는 것은 여론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여론 조작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 미디어가 엄청난 정보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거대 언론들이 언론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돈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여론 조작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 사태 때 언론들은 사실과 상관없이 엄청난 양의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여론은 장관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들끓었고, 이 사태를 주도했던 인물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론 조작의 결과인 셈입니다.

 

이렇게 여론의 힘을 아는 정치인들이 하는 말 중에 국민의 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서로 자기주장을 하면서 국민의 뜻이고,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데, 국민인 우리는 헷갈리기만 합니다. 정치인들이 여론 뒤에 숨고, 여론을 이용하는 비겁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닙니다. 기독교인들도 잘하는 말이 있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하나님도 머리 아프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이겠지요. 하나님의 뜻 뒤에 숨어서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려는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때는 주의해야 하고, 책임 있게 말해야 합니다. 설마 하나님께서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겨야 국운이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을 지지했겠습니까? 아마 하나님은 우리 국민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중립을 지키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지한 후보가 낙선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중립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도 서로의 생각이 다릅니다. 헬라 사상에는 세 가지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친구와의 우정, 남녀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완전한 사랑이 있습니다. 세 가지 사랑은 모두 필요합니다.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우정도 필요하고, 가정을 이루는 부부의 사랑도 필요하고, 부모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헌신적인 사랑도 필요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도 자기 생각대로 서로 다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모두 사랑인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 사랑을 알아야 하고, 또 배워야 합니다. 진짜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8, 16)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질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랑이고, 하시는 말씀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랑이라고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읽어야 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생명과 진리,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할 때, 이 말은 하나님을 믿은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8)

 

이 사랑에 대해서 2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단언합니다. 그래서 21절은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안으로 들어가서 사랑의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체험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신앙 훈련을 위해 묵상과 기도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극적인 신앙체험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체험만큼 극적인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겸손하게 서로 돕고 나눌 때 우리의 사랑은 완성됩니다. 사랑의 완성은 신앙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같이는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곧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살리려 하신 것입니다. 독생자는 외아들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이웃과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조건이 된다거나,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를 사랑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솔직히 그냥 이대로는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덮어놓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시고, 먼저 용서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은 다른 무엇도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1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다면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시고, 주님 안에 우리가 거한다고 했습니다. 주님과의 일치를 이룬 것입니다. 주님과의 온전한 일치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먼저 용서하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형제와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하면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진실한 믿음인 것을 형제나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증명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알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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