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좌로부터 =>어머님=>아버지=>완도국회의원 최서일의원님 / 권치남결혼식날/종로예식장

나의 신앙과 인도자 3인을 다시 생각하면서 2022년 11월 14일 월요일 권치남

 

1. 육에 어머님 고.양옥심 생모

고.양옥심 생모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양씨 집안에서 태어나 관산리 권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7남매(남자: 5명 여자: 2)를 나섰다. 새벽닭이 울 무렵 나는 섬 조약도에서 부. 권 호 근 과 모. 양 옥 심 사이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삼재라 불렸다. 아버지는 학력은 무학이 전부지만 머리가 좋아 위로 두 형들의 이름을 돌림자도 안인 끝 자를 재자로 지으셨으니 셋째 나를 편하게 삼재라 지어 부른 것 같다.

 

그런데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유식한 이모부님께서 삼재는 일본사람 이름 같고 천, , , 을 삼재라 하기 때문에 사람 이름이 너무 좋아도 팔자가 나쁘니 치 남 이로 다시 지어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고향 분들은 나를 삼재라 부른다.

 

나의 어머니는 태몽이 좋았고 띠와 시가 좋을 때 태어나서 성격이 온순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면서 좋아 하셨다고 한다. 셋째 득남을 기뻐하신 어머니는 아들을 연속 셋을 낳고 보니 남존여비 사상이 남 보다 강하신 아버님께 여자로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가정 일을 타합하지 않고 혼자서 처리하신 아버지 성격에 여자로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만삭된 아내를 나몰라하고 밤새워 투전(화투)만 하고 다니시고 내가 태어난 순간에도 투전판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득남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 투전이 잘되어 그 날 밤 많은 돈을 땄다고 한다.

 

그 후 부터는 그 돈으로 집안을 돌보고 일도 열심히 했다고 어머니는 이야기 하셨다.

 

이렇게 서러움을 받고 태어나서 자랐고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걸음을 간신히 걷기 시작할 때 우리 집 부엌의 바닥이 흙 이여서 울퉁불퉁한 그 위를 아버지 신발을 끌고 부엌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데 뒤에서 형이 신발 뒤끝을 밟아 앞으로 넘어져 이마를 많이 다쳐 상처가 생겼다. 그때 상처 부위에 된장을 발아 치료 했다. 지금도 이마 중앙에 흉터가 있다.

 

2) . 어머니 고. 김활란 박사

. 어머니 고. 김활란 박사

김활란 박사는 인천제물포 배다리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1899년이 기해년이었으므로 김활란박사 부모는 기득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름이 없던 시절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딸들에게도 이름을 지어 줄 만큼 개화한 분들이었습니다.

 

그가 일곱 살 때 인천의 내리교회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으면서 딸들은 엘렌·마리온·헬렌 등의 세례명을 갖게 됐고, 아버지가 세례명에 한자를 달아 애란·활란 등의 새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김활란박사는 기득·헬렌·활란 등 3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할렐루야, 승리하세요”라는 인사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어땠을까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3) 영.육 아내 고. 정자심 집사

영.육 아내 고. 정자심 집사

전남 신안군 장산면 도창리 정씨 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결혼하여 3남매(남자: 1 여자: 2명)를 두고 있다. 생활화된 우리 집 새벽예배 저는 70년도 직장을 따라 구의동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곳에서 만 25년을 살았고, 세 자녀를 낳아 길렀습니다.

 

아내는 꾸준한 믿음생활로 가정을 이끌었고, 자녀들도 열심히 동원교회에 다였습니다. 그러나 가장인 저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세상 재미에 빠져 먹고 마시며, 자신이 최고인 양 생각하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내의 간곡한 전도를 거절하다가 가정의 평안을 위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세상 즐거움으로 돌아섰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심방까지 받았으나 부정적이었고, 성경과 찬송가책을 사주시신 전 집사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몰랐습니다.저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죄인을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세 자녀의 대학입시를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내는 자녀들의 대학입시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했고, 대학입시로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우리 집은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세 자녀 모두 4년제 대학에 보내주셨고, 큰딸은 대학원까지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새벽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즐거운 삶이 진짜 즐거운 삶이 아니고, 어둡고 혼탁한 삶, 죄 많은 삶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저의 삶은 건강해졌고, 주변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더니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가장이 예수님 안에서 바로서니 가정은 더 화목하고 평안하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 5:16,17,18)는 말씀을 기억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저희 가정은 변함없이 새벽 5시 30분 예배를 드리고 하루가 시작됩니다.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님께 아뢰며 인도하심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이 계속적으로 새벽예매를 드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안에서 더 화목하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현재 생활에 감사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