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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학/국회

 

1.처음 위치

근대 이전의 정치학 근대 정치학의 성립 근대 정치학의 성립 하위분류 토글하기현대 정치학의 발달 현대 정치학의 발달 하위분류 토글하기정체정체 하위분류 토글하기핵심 개념주요 정치학자들주요 정치학자들 하위분류 토글하기같이 보기참고 자료

 

2.정치학문서토론읽기편집

 

3.역사 보기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정치 과학에서 넘어옴)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 대해서는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정치 관련 시리즈정치분류나라별 상황정치체제학문분야공공행정정책권력분립관련주제 정치학(政治學) 또는 정치과학(政治科學, 영어: political science)은 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거나 자원의 획득, 배분을 둘러싼 또는 권력의 행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제() 세력들 간의 갈등과 투쟁 및 타협으로 나타나는 국가현상을 중심으로 정치사상과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사회과학의 고급 분야로 과거부터 왕족 · 정치인들이 배우던 최상위 학문이다.

 

4.근대 이전의 정치학

정치사상이나 정치이론은 인간이 정치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정치에 관한 체계적 연구는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의 전통은 중세 말엽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부활된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의 정치학은 도시공동체나 세계적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며 윤리나 신앙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근대적 의미의 정치학과 그 성격을 달리한다.

 

근대적 의미의 정치학은 중세적 세계공동체가 해체되고 근대국가가 형성된 데서 비롯된다. 근대정치학은 근대의 주권국가를 대상을 한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정치학과 구별된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적인 선입감을 벗어난 객관적 방법을 통해서 세속군주의 통치기술을 논했고 보댕은 법률학적 입장에서 근대국가의 주권성과 아울러 군주의 절대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었다. 이와 같이 근세 초에 전개된 정치학은 교권에 대한 세속권의 절대성과 전제군주국가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론이었다. 이 시기에 있어서의 정치학은 국가의 주권성과 군주권력의 만능성을 정당화하는 학문의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5.근대 정치학의 성립

그 후 국가의 기반이 확립되고 전제군주정치에 대항하는 민권사상이 대두하게 됨에 따라 정치학은 국가권력의 소재에 관해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의 정치학은 국가주권 이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아울러 정치의 실태에 대한 실증주의적 분석을 기초로 하게 된다. 국가주권이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자연법 사상에 기초를 갖는 국가계약설에서 비롯된다.

 

6.국가 계약설

<nowiki /> 사회 계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가나 사회의 생성을 계약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 말기에 있었다. 애당초 계약설은 국가나 사회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사상과 대립되어 생겨났으며, 16세기 후반기에 있어서는 군주와 국민간의 통치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변해 갔다. 이 이론에 의하면 군주의 지배권은 군주와 국민 간의 계약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며 군주가 계약을 어기고 법을 침범할 경우에는 국민의 저항을 받고 국민에 의해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폭군 토벌의 이론으로 등장했던 계약설은 근대 시민사회 형성기에 국가형성 원리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나 국가계약설이 반드시 근대적 민권사상만을 강조했다고 볼 수는 없다. 17세기 영국의 민주혁명에 항의하고 절대군주제를 옹호한 대표적 이론가로는 홉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 계약론자는 로크나 루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근대적 민권사상을 주장하고 민주주의 이론에 이바지하고 있다.

 

계약론의 특색은 정치의 세속적 성격과 이성적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의 교권이론이나 신앙적 자유와 평등이론과는 다르다. 특히 로크로 비롯된 권력분립론은 몽테스키외에 의해서 3권분립론으로 체계화된다. 그리고 루소의 자유주의론은 독일의 관념적 정치이론으로 연결을 보게 된다. 국가계약설은 17세기의 영국 혁명, 18세기의 미국 독립 혁명, 프랑스의 민주혁명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7.국가계약설에 대한 비판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과격성이 남긴 후유증은 자연법 사상과 국가계약설에 대한 반발을 야기시키게 된다. 국가계약설은 국가와 사회의 생성을 인간의 역사나 경험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면할 도리가 없다. 에드먼드 버크는 역사적 입장에서 자연법과 사회계약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반박하고 민족의 관습과 전통과 그 역사적 발전의 가치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다른 한편 영국의 공리주의 사상가들은 공리(utility)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경험주의 이론에 입각한 정치이론을 전개하였다.

 

8.공리주의적 정치학

공리주의는 정치적 권위의 근거를 추상적 이성이나 권리에서 찾지 않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서 찾게 된 것이다. 공리주의의 시조인 벤담 및 그의 후계자 J. S. 밀은 입법·대의정부·선거제도 등의 대의민주정치에 있어서의 실제적 문제를 대상으로 연구했고, 현실정치에 대한 많은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특히 밀은 산업사회의 발전이 가져오는 정치적 제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시했고 개인주의와 사회주의를 조정하는 자유주의의 수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9.법학적 정치학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달된 정치학은 독일의 관념적 국가이론 형성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시민사회의 형성이 뒤늦게 이루어진 독일에 있어서는 법학적 정치학의 전통이 확립된다. 본래 군주의 주권성을 옹호하려고 등장했었던 주권 이론이 독일에 있어서는 국가주권 이론으로 변질된다. 독일의 국가론은 군주주권론과 루소의 인민주권론을 절충하여 국가주권론으로 발전하고 국가의 본질을 유기체적인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독일에 있어서의 일반 국가론의 발전은 옐리네크(1851-1911)에 의해서 일단 집대성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학을 수립함에 있어 크게 공헌한 학자로는 블룬츨리(J. K. Bluntschli)를 들 수 있다. 그는 국가학을 국가론·국법학·정책학으로 3분한다. 국법학은 국가를 하나의 법규범 질서로 보고 그것을 범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며, 국가론은 국가일반의 존재 그 자체를 사회법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며, 정책학은 국가의 목적과 활동을 연구하는 실천과학이다.

 

10.다원적 국가론

=>독일에서 발달한 국가학적 전통은 20세기 전반기에 영국에서 주장된 국가다원론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국가다원론은 국가학에서 전제로 하는 국가주권론에 반대하여 주권의 소재가 다원적인 사회집단에 있음을 주장하는 이론이나 근본적으로는 주권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학에서 법학적 요소를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근대적 정치학은 자연법에서 비롯된 사회계약설·역사철학·실증주의 국가학을 기본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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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현대 정치학의 발달

20세기까지의 정치학은 철학이나 법학 또는 역사학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공인을 받지 못했다. 정치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인정하고 대학에다 정치학과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었으며, 미국에서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치학과를 설치했다. 그 까닭으로 정치학 연구에 있어서 과학기술면에 있어서의 발달은 미국이 가장 앞서고 있다. 다른 모든 학문에 있어서도 제2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1945년 이후 정치학은 유례없는 발달을 거듭하고 국제적으로도 공인된 학문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해방과 더불어 정치학과 또는 정치 외교학과가 각 대학에 설치되어 정치학을 독립된 학문으로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정치학의 연구대상 및 방법에 있어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학 자체에 대한 국제적 인식도 2차대전을 전후해서 크게 달라진다.

 

12.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정치학

우선 2차대전 이전의 정치학의 실태를 본다면 19세기까지의 국가학적인 전통과 20세기의 과학적 방법이 공존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 있어서도 초기의 정치학의 발달은 독일의 학자와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다. 영국에 있어서의 정치학의 주제는 통치의 원리를 따지는 철학이나 영국 헌정(憲政)의 실태를 설명하기 위한 헌정이론이었다. 프랑스에 있어서의 정치학은 행정적인 효용성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에 있어서도 마키아벨리 이후 정치학의 전통은 단절되고, 정치학은 역사와 철학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속에서도 정치학을 하나의 독립된 과학으로 확립시키려는 움직임이 미국과 영국의 학계에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었다.

 

정치학을 독립된 과학으로 확립함에 있어 콩트(1798-1857)실증주의 철학의 영향력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는 사회현상도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진실한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과학주의는 미국에서 크게 환영받고 영국에서도 받아들여진다. 미국에 있어서는 메리엄(C. E. Merriam)의 과학주의적으로 정향된 정치학의 새국면(1925) 이 그 후의 정치학의 전통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벤틀리(A. Bentley)통치과정론(1908)은 국법학적 전통을 벗어난 동태적 정치학의 대상을 개척하였다. 영국의 배저트(W. Bagehot)물리학과 정치학(1900)에서 정치학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볼 때 20세기 전반기의 정치학은 유럽과 미국에 국한된 학문이었으며 유럽 대륙의 제 국가에 있어서의 정치학이 일반적으로 국가학적 전통 가운데 남아 있었음에 반해서 영·미의 정치학은 정치학을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특히 미국에 있어서는 정치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했었다.

 

13.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정치학

2차대전 후의 정치학의 발달은 미국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미국에서 발달한 과학적인 방법과 정치의 실태를 해명하려는 비법학적(非法學的)인 연구의 전통은 거의 세계적으로 정치학의 연구와 교수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전통적 정치학 연구에 갇혀 있던 유럽의 정치학계에서도 미국의 정치학을 도입하게 되고, 과학적으로 정향된 정치학 연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한편 미국의 정치학계는 과학적 정치학의 새로운 분야를 크게 개척하게 된다. 미국이 처해 있는 국제적 위치를 배경으로 국제관계·지역연구 및 후진국 정치까지 포함하는 비교정치 분야에까지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미국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더욱 추상화된 과학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미국에서 발달된 행동주의는 인간과 정치를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정치의 문제가 과학기술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주의적 접근방법이 광범한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다 하더라도 정치생활에 있어서의 가치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과학은 사실의 인과관계를 설명함에 적절할지는 몰라도 사실을 떠난 이념을 정립해 주는 것은 아니다. 행동주의 개척자의 한 사람이었던 이스턴(D. Easton)1969년 미국 정치학회 회장 취임인사에서 밝혔듯이 현대의 정치학은 후기 행동주의시대에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14.대한민국의 정치학

대한민국에 정치학이 도입되고 대학에 정치학과 또는 정치외교학과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1950년까지의 정치학은 영·미에서 발달한 정치학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을 통해서 도입된 독일의 국가학적 전통이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영·미 특히 미국의 정치학의 영향이 크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민주정치론 또는 민주정부론은 우리 학계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정치학은 주로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 또는 제도적 해설에 그쳤으며 미국에서 발달되고 있는 과학적 연구방법까지 도입한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전통적 학풍이 청산되고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학풍이 우리 정치학계를 풍미하게 되었다. 정치에 대한 이념·제도의 해설은 점차 지양되고 정치동태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행동주의적 정치학이 도입되는 것도 이 시기이다. 196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정치학의 정향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이루어지는 한편 대한민국 정치의 실태를 설명할 수 있는 토착적 정치학의 개척이 모색되기 시작하다. 그리고 7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러한 기운은 더욱 농후해졌다. 한국의 정치학은 이제 국제적 성격을 벗어나 독자적 정치학의 개척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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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 59학번 법대 교수님들 59학번 법학과 동기생

권치남님 2022. 11. 15. 03:04 수정 공개 

1. ..월 국어국문학교수 2. ..원 정치학과교수 3...근 헌법학교수 4.이대총장 김활란박사(특강기독교)

 

59학번 법학과 동기생사진

법대동기생 서오릉 야유회

 

1. ..월 국어국문학교수 작가 박목월(朴木月

 1915 ~ 1978) 시인. 경북 경주 출생. 본명 박영종. 1939문장길처럼’, ‘연륜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향토성이 강한 서정에서 출발하여 만년에는 신앙에 깊이 침잠하는 시 세계를 보였다. 시집으로 산도화”(1955), “경상도의 가랑잎”(1962) 등이 있다.

작품 청노루 이 시는 절제된 언어와... 19151978. 시인.|[개설] 본명은 영종(泳鍾). 경상북도 월성(지금의 경주) 출신. 1935년대구의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를 졸업하고, 도일(渡日)해서 영화인들과 어울리다가 귀국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 박목월(朴木月, 191616~ 1978324)은 대한민국의 시인 겸 대학 교수 및 교육자이다.그는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재직중이던 1978324일에 서울에서 고혈압으로 병사하였고 후임 한대 문리대 학장 직위는 조연현이 승계하였다. 본명은 박영종(朴泳鍾)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경상남도 고성... 한국시단에서 김소월과 김영랑을 잇는 시인으로, 향토적 서정을 민요가락에 담담하고 소박하게 담아냈다.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의 한 사람이다. 그의 초기 시들은 향토적 서정에 민요적 율조가 가미된 짤막한 서정시들로 독특한 전통적 시풍을 이루고 있다. 그의 향토적 서정은 시인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 [출생] 19160106, 경북 경주시 [사망] 19780324[직업] 시인, 대학교수 [학력] 계성중학교 [신체] 혈액형 A[성별] 남성 [데뷔] 1939년 문장 '길처럼' 등단 [관련 인물/단체] 박동규(아들)

 

2. ..원 정치학과교수 ..원 정치학과교수

출생;1926년 사망;2006년 경력;대통령비서실장, 외무부장관 성별;남 분야;역사/현대사 ;요약 19262006. 대한민국 정치인, 외교관. [내용] 1926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신창소학교, 송도중학교를 거쳐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 전신)에 편입했으나 중퇴하였다.

1945년 연희전문학교 정경과에 입학, 재학 도중 미국으로 유학하여 1950년 미국 리오그란데대학을 졸업하였다. 1952년 미국 켄트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58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1958년 국제학술원을 설립하고 원장에 취임하였고, 1958년부터 1963년까지 국방대학원, 서울대, 동국대,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1962년 대통령비서실장에 발탁된 뒤 태국대사 등을 거쳐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외무부장관으로 복무하였다. 외무부장관 재임 시절 한일회담, 월남파병, 아스팍(ASPAC: 아시아 태평양 각료 이사회), 한미행정협정 등의 주요 외교 현안을 타결시켰다. 1965년 특명전권위원으로 한일협정을 조인하였고, 1966년 아시아태평양지역각료회담 위원(ASPAC)을 지냈다.

19677대부터 8, 9(민주공화당 전국구 의원) 국회의원과 정우회 총무를 지냈다. 1973년 주스위스대사, 197910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 국회의원), 10대 국회 외무위원장, 유신정우회 운영위원 등을 지냈고, 1979‘10·26사건이후 정치에서 은퇴하고 국제학술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등수교훈장, 말레지아·베트남·서독·아르헨티나·이탈리아·요르단·이란 최고훈장 등을 수훈하였으며, 2006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교수님은 30대 교수님이였고 지금 사진이나 그때 실물이나 미남으로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였다. 그런나 당시 4.195.16으로 시국이 혼란하여 학생들은 매일 데모로 수업을 거부하고 운동장이나 교외로 나가 데모를했다.

저학년들은 고학년들 지시따라 성동경찰서까지 데모대가 점영하고 어용교수추방. 등록금인하. 총장퇴진이 데모학생들 구호였다. 데모가 극에 달할때는 을지로6가 한양공고 주변이나 당시 서울운동장 주변까지 나가서 해산하기도했다. 이제 교수님은 고인이되시고 출생부터 사망은 다음과같다.

이름.이동원/출생 - 사망 1926~ 2006/출신지 함경남도 북청군 /성별 남 /대표관직(경력) 대통령비서실장, 외무부장관 /대한민국 정치인, 외교관./내용1926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신창소학교, 송도중학교를 거쳐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 전신)에 편입했으나 중퇴하였다.

1945년 연희전문학교 정경과에 입학, 재학 도중 미국으로 유학하여 1950년 미국 리오그란데대학을 졸업하였다. 1952년 미국 켄트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58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1958년 국제학술원을 설립하고 원장에 취임하였고, 1958년부터 1963년까지 국방대학원, 서울대, 동국대, 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1962년 대통령비서실장에 발탁된 뒤 태국대사 등을 거쳐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외무부장관으로 복무하였다. 외무부장관 재임 시절 한일회담, 월남파병, 아스팍(ASPAC: 아시아 태평양 각료 이사회), 한미행정협정 등의 주요 외교 현안을 타결시켰다.

1965년 특명전권위원으로 한일협정을 조인하였고, 1966년 아시아태평양지역각료회담 위원(ASPAC)을 지냈다. 19677대부터 8, 9(민주공화당 전국구 의원) 국회의원과 정우회 총무를 지냈다.

1973년 주스위스대사, 197910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 국회의원), 10대 국회 외무위원장, 유신정우회 운영위원 등을 지냈고, 1979‘10·26사건이후 정치에서 은퇴하고 국제학술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1등수교훈장, 말레지아·베트남·서독·아르헨티나·이탈리아·요르단·이란 최고훈장 등을 수훈하였으며, 2006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근 헌법학교수 갈봉근(葛奉根,)

193246~ 20021118)은 대한민국의 헌법학자이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개성(開城). 생애[편집]경남중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Kiel, Bonn 대학에서 공법학을 전공하였으며, 독일 본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Marburg 대학교 강사, 서울대 법대, 상대, 문리대, 동 대학원 강사와 중앙대학교 교수 및 한국헌법학회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중앙대학교 교수 재직시, 법무부의 헌법심의위원회에 참여하여 "유신헌법"을 마련하였다.[1] 9, 10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이었다.

 

4.김활란 이대총장 특강기독교학

 

김활란 박사는 인천제물포 배다리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1899년이 기해년이었으므로 김활란박사 부모는 기득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름이 없던 시절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딸들에게도 이름을 지어 줄 만큼 개화한 분들이었습니다.

 

그가 일곱 살 때 인천의 내리교회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으면서 딸들은 엘렌·마리온·헬렌 등의 세례명을 갖게 됐고, 아버지가 세례명에 한자를 달아 애란·활란 등의 새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김활란박사는 기득·헬렌·활란 등 3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할렐루야, 승리하세요”라는 인사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어땠을까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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