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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

2022 11 27 대림절 첫째 주일공동체예배 설교요약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

성경: 누가복음 21장 25-38절

“25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무화과나무에서 배울 교훈(마 24:32-35; 막 13:28-31)

 

29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 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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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부터 교회력으로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래서 대림절준비와 기다림의 계절, 대림절 Season of Advent 이라고 하는데 대림절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지막 심판 날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동시에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즉 악의 권세가 끝나고, 전쟁의 도구가 평화를 위해 쓰이며, 하나님의 구원이모든 민족 위에 임하기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또한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상기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대림절기를 위한 성서 본문과 설교는 종말론적 특징을 띠게 됩니다. 오늘 대림절 첫째 주일은 공의를 상실한 이 땅에 대한 깊은 탄식과 참회를 드러내고, 둘째 주일부터 넷째 주일까지는 성탄이 가까워질수록 구원의 기쁨과 설렘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납니다.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 참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2022년 대림절 기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깊이 본문을 통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때와 징조(종말0에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장은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과 비슷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다른 말로 종말의 징조는 무엇인지를 요구하는 본문입니다.

 

과연 오늘 설교 본문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이 AD 80년 이후에 쓰여진 것을 생각할 때 AD 30년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부활 승천과 종말의 시기를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고통당하며 참고 인내하던 중 AD 70년 로마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완전히 훼파되고 예루살렘 성전 역시도 불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대교회와 유대교) 성(城)과 성전(聖殿)은 사라졌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유대교나 초대교회나 모두 희망이 살아져 갈 때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이스라엘의 실질적 정신적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징적이든지 명예이든지 하여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이든지 자유민이든지 결국 야훼 하나님의 도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도성의 중심에 하나님의 땅 거주지 성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스룹바벨(헤롯) 성전이라고 하여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일신 야훼를 섬기는 가장 중요한 성전입니다. BC 167년 하누카 안티오쿠스 4세의 성전 더럽힘 이후 3년 반 만에 마카비 혁명을 통하여 성전정화 사건을 거치면서 유대교의 정신적 뿌리로서 성전제사와 하시딤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인들의 일상 유대화를 강조하는 기초석 역할을 하였습니다. 회복의 사역도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휘청 이다가 결국 로마와 타협하여 야훼 신앙을 섬기는 자치국으로 독립되었지만 결국 이방 혼혈인 헤롯때 다시금 증축하면서 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AD 70 로마제국과의 전쟁에서 유다가 패함으로서 그 결과는 헤롯성전이 다 훼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죄한 예수님을 AD 30년 유대종교법과 로마의 치안법을 걸어서 십자가형에 처하게 된 형벌의 대가로 AD 70년 유대교의 본산지가 살아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이 거대한 사건이 종말의 신호로 보였으며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한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AD 80년 중반 즉 로마제국에 의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초대교회성도들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파괴의 역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그래서 성서는 시대마다 새로운 세대를 요구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 사회 속에서 정보화 사회 모든 지구촌이 하나의 도시로 되는 초고속 사회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아르키미데스 달재 탐사 계획이 발표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값은 폭등하고 금리 역시 덩달아 오르고 있고, 코로나 3년간은 모든 것이 정지 상태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징조입니다.

 

정통신앙에서는 종말의 때는 예수님 스스로 말했듯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징조는 시대마다 계속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 신앙인들은 대비하는 자세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어느 순간 하나님께 돌아가고 인류는 분명 마지막을 향해 나아갑니다.

 

누가복음의 기록 역시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예수그리스도 메시아의 탄생과 그 기쁜 소식은 인류에게 전할 예언의 성취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후속편이 사도행전의 모습은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이제는 12사도가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나라 확장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2천년동안 정통교회들은 줄기차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를 복음으로 들어보지 못한 자들에게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하나님이 인정하는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교회의 일이요 복음이요 성도들의 위대한 소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성서는 미래를 보여주기보다 현재의 삶에 어떤 자세로 살아갈지를 묻고 있습니다.

 

본론

그래서 오늘 본문을 다시금 보면 핵심은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 깨어 있으라 ”입니다.

 

일반 회사도 어려우면 감원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가능에 도전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사가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신입사원을 뽑습니다.

 

위기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늘 도전하는 태도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위기의 시대는 늘 상 존재했습니다. 기독교 사상 자체가 불온한 사상입니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은 오늘날 일상이지만 그 이전 100년 전만해도 남녀가 차별이 있고, 인종차별이 있고, 같은 인종이라도 금수저 은수저 태어남의 차이가 엄청나게 있었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다했다라고 할 수 없지만 항상 기독교는 지배자들이 볼 때 불온했고, 공격적이었고, 반항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안에서도 예수님의 복음은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제사장 그룹 모두들에게 참으로 이상한 내용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의 성취였으며 새 모세였으면 새 아브라함 새 유다 였습니다. 제장신이 아니라면 그 누가 이것을 믿겠습니까?

 

2. 25-26절 불안

 

시대의 불안에 25-267절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AD 80년 사도행전 성령의 임재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본문이전에는 당대의 예루살렘 불탐과 예루살렘 성전의 훼파 이후 유다 지역 이외의 지역으로 쫓겨나 간신히 생명만 부지하고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교회라는 작은 가정 교회들이 출연하였고 사도 바울 디도 신라들을 통하여 부활신앙과 승천 그리고 정의와 진리에 대한 삶의 변화된 태도가 있었습니다. 일부는 속히 예수님이 다시 심판의 주로 오시길 기다리고 일부는 영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앞으로 나갑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야훼 신앙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주인이었습니다.

 

3. 27-28절 의망

 

그런데 뜻밖에도 사회는 불안한데 초대교회 공동체는 누가복음은 고개를 들라고 이야기합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합니다.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고난의 시대 구원받을 자들이 분명해집니다. AD 80년의 상황 배교자들이 늘어나고 순교자들도 늘어납니다. 이제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죽을 것인지 세상의 위협에 굴복할 것인지 전통적 유대주의 자들, 헬라파 로마 제국주의자들, 사두개인 현실론자들 유다를 대표하는 고위직이지만 그들은 타협하고 로마 제국의 은총을 기다립니다. 아직도 소국의 지배자가 되길 원합니다.

야훼의 백성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들, 예수에게서 소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세상이 극도로 초대교회 성도들을 핍박하는 시기가 오면 더욱 분명히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3. 비유 29-33절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절명의 고백의 순간에 임재 합니다. 생과 사를 다 주님께 놓아야 합니다. 인간적 경험과 지혜는 늘 상 혼돈에 빠지게 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세상을 변화를 보고 준비하듯 너희들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유다가 살아지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터인데 그때는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성서는 그 모든 곳에서 당대의 현실을 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만이 생사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듯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정답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순교의 시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고백에서 모든 것의 주인이 예수라고 고백할 때 임재 합니다. 생사를 주님과 함께 넘었다면 그 때부터는 환희와 기쁨입니다. 죽음으로 세상은 위협합니다. 성도는 주님이 생사를 지배함으로 연락주세요

 

결론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 그리고 아주 현실적인 것들이 등장합니다. 방황함은 이 땅의 세속적 현실입니다. 방탕함, 술 취함, 생활의 염려 성서는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 나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위기는 새로운 돌파구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계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불안한 요수 지진이나 전쟁 오늘날로 말하면 핵전쟁, 기후 환경 위기, 강대국의 약소국 침범 과거에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들 소말리아내 전등

36절은 제자들에게 이런 것에 대하여 능히 피하라 새벽에는 인자 즉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고 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위기의 시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전 인류적으로 위기의 시대 무엇을 하시나요?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허무주의 수동적 삶은 아니 됩니다. 성도는 적극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에 의지하여 피하고 지혜를 발휘하여 피하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마십시오. 성령에 취하십시오. 방탕하지 마십시오. 가정을 지키십시오. 시대가 하나님나라의 순서에 어디쯤 있는지를 살피십시오. 그리고 행동하십시오. 깨어 있다는 것이 수동이 아니라 능동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곧바로 일어서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죽음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성도들을 위협하고 성도들을 감금하고 성도들의 밥줄을 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시대를 밝히며 새로운 시대에 선두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시대가 밝아옵니다.

 

누가복음은 제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주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했지만 마음의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추후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만나고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용기를 내어 사도행전의 성령 역사에 동참하며 복음을 전하고 기쁨과 환희 가운데 한 사람씩 자신의 하나님나라 미션을 완선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성령의 오심 그 누구도 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늘 예비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시대를 분변하고 시대를 앞서갈 주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행복한교회가 앞으로 이 시대를 주도할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알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웃들은 죽어가고 이웃들은 병들어가 고 이웃들에게 소망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참여하라고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기도합시다. 그리고 깨어나서 행동합시다. 일단은 말씀에 깨어나야 합니다. 아멘

(예화)

 

타이태닉호 1912년 4월 영국 사우스헴프턴 항에서 뉴욕으로 가는 초호화 여객선 처녀 출항때 빙산에 부딪쳐서 침몰함 1600여명 정도가 죽음 그때 찬송하며 남편의 손을 잡고 죽는 사람들에게 종말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다가온 죽음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출처] “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작성자 오늘도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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